숫자로 본 1979년 영화

씽크누리
사진 출처 : 한국영상자료원

1979년은 유신의 마지막 해이자 대통령 암살이라는 격변 속에 휩싸인 한 해였습니다. 거리의 혼란과 불안정한 경제 속에서도 사람들은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서울 개봉관 기준으로 연간 관객 수는 총 1,317만 명, 영화가 지금처럼 일상적 소비재는 아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 수치는 결코 적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중 국산 영화는 385만 명, 외화는 932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외화가 70% 넘게 점유하면서 당시 국내 영화계의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국산 영화는 한 편당 평균 5만5,000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이 중 1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작품은 단 10편에 불과했고 그 해 최고 흥행작은 이름만 들어도 아련한 멜로 감성이 떠오르는 '속 별들의 고향', 서울에서만 3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국산 영화 1위를 차지했습니다.

뒤를 이은 작품은 24만 명을 동원한 '내가 버린 남자', 그리고 3위는 청춘과 현실의 무게를 담은 '병태와 영자'로 18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외화에 밀려 고전했지만 그 시대 관객의 감성과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들 입니다.

연기자로는 유지인 씨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무려 12편의 작품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했으며, 이대근(11편), 신성일(10편)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연기력과 흥행력을 겸비한 이들은 그야말로 '1979년 영화의 상징'이었습니다.

반면 외화는 총 55편이 상영되었고 평균 관객 수는 17만 명 이었습니다. 국산 영화 평균보다 3배 이상 많았습니다.

그중 최고의 흥행작은 성룡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작품, '취권'입니다. 유쾌한 액션과 코믹한 무술 연기로 서울에서만 50만 명을 동원하며 단숨에 1위를 차지했습니다.

뒤이어 2위는 다소 도발적이면서도 당시 감각적인 영상으로 화제를 모은 '깊은 밤 깊은 곳에'(47만 명), 3위는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전쟁영화 '패세이지(Passage)'로 46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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